
1. 책 속에서 만난 ‘다르게 사는 방식’
한동안 저는 머릿속으로만 사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선택을 할 때도 계산부터 했고, 감정보다는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행동은 점점 느려졌고, 삶은 안전했지만 생동감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194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한 지식인 화자가 크레타 섬에서 조르바라는 인물을 만나며 겪는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화자는 광산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크레타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자유분방한 사내 조르바를 고용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며, 여러 사건을 겪습니다. 사업은 순탄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은 사건이 아니라 ‘조르바’라는 인물 자체입니다.
조르바는 계획보다 즉흥을, 이성보다 본능을, 계산보다 열정을 택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에 빠지면 숨기지 않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춤을 춥니다. 반면 화자는 늘 생각이 앞섭니다. 책을 읽고 사색하며, 삶을 이해하려 하지만 정작 삶 한가운데로 뛰어들지는 못합니다.
이 대비가 소설의 축입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저는 자연스럽게 화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2. 머리로 이해한 삶과 몸으로 살아낸 삶
조르바는 특별한 철학을 설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학을 비웃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는 “삶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살아보라”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말은 문장으로 적으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주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광산 사업은 결국 실패로 기울고, 화자의 계획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조르바는 크게 낙담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현실 앞에서도 그는 춤을 춥니다.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데, 그 장면은 이 소설의 핵심을 압축합니다. 실패를 분석하는 대신, 그 순간을 살아내는 태도 말입니다.
읽으면서 불편한 감정도 있었습니다. 조르바의 자유는 때로 무책임해 보이고, 충동적입니다. 사랑도 일도 모두 뜨겁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삶이 정말 이상적인가 하는 질문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이 오래 남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쉽게 잃어버린 감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일하고, 몸으로 부딪히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태도. 저는 점점 감정을 정리하고, 다듬고, 안전하게 표현하는 쪽으로만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조르바를 읽으며 깨달은 것은 ‘나도 저렇게 살겠다’는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무 머리로만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행동은 줄어들고, 분석이 늘어날수록 경험은 얕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3. 실패한 사업보다 더 크게 남은 것
이 소설은 겉으로 보면 성공담이 아닙니다. 광산은 무너지고, 인간관계는 완벽하지 않으며,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패배감이 남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화자는 조르바를 떠올리며 그에게서 배운 것들을 곱씹습니다. 조르바는 체계적인 가르침을 준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함께 살아가는 동안, 화자는 ‘살아 있는 인간’을 가까이서 목격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제 일상을 떠올렸습니다. 요즘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되었는지부터 점검합니다. 실수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위험을 계산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부딪혀보는 경험은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르바처럼 살 자신은 솔직히 없습니다. 모든 것을 던지고 본능대로 움직일 용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시작조차 늦추고 있었던 건 아닐지.
《그리스인 조르바》는 정답을 주는 소설이 아닙니다. 대신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삶과 몸으로 살아내는 삶.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으라고 조용히 내버려 둡니다.
읽고 난 뒤 제 삶이 갑자기 대담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계산을 하고, 여전히 망설입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은 덜 완벽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은 분석을 멈추고, 한 걸음 먼저 내딛어도 된다는 것.
이 소설이 제게 남긴 변화는 그 정도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렇게 제 독서 목록 한쪽에 조용히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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